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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약탈한 왕실 사당 '관월당', 돌아오자마자 밝혀진 진실

 조선시대 왕실 사당으로 추정되는 '관월당(觀月堂)'이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반출된 지 100년 만에 한국으로 귀환했다. 국가유산청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은 지난 23일 관월당의 소장자인 일본 가마쿠라 소재 고토쿠인(高德院) 사찰과 정식 양도 약정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관월당은 원래 서울 지역에 있던 왕실 건물로 추정되며, 1924년 조선식산은행이 야마이치 증권의 초대 사장 스기노 기세이에게 증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일본 도쿄로 이전되었고, 1930년대에는 스기노가 고토쿠인에 기증하면서 사찰 경내로 옮겨져 관음보살상을 봉안한 기도처로 사용되어 왔다.

 

이번 귀환은 해외에 있는 한국 건물 전체가 돌아온 최초의 사례로 역사적 의미가 크다. 1995년 일본 도쿄 오쿠라호텔 정원에서 발견된 경복궁 자선당의 유구 110톤이 반환된 적이 있으나, 대부분 기단과 주춧돌 등 석재였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목조 건축물 전체가 돌아왔다.

 

귀환 결정은 사토 다카오 고토쿠인 주지가 관월당이 유래한 한국에서의 보존이 더 적절하다고 판단하면서 이루어졌다. 사토 주지는 해체와 운송 등 일본 내 비용을 자비로 부담하는 등 적극적인 협조를 보였다. 그는 "한국과의 협업을 통해 건물의 역사적 가치를 분명히 규명했고, 최적의 보존을 위해서는 한국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최선이라는 점에 공감했다"며 "한국 내 적절한 장소에서 본래의 가치를 온전히 회복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관월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조선 후기 왕실 사당 양식을 지닌 목조 건축물로, 맞배지붕 단층 구조를 갖추고 있다. 건축학적 연구에 따르면 대군(大君)급 왕실 사당 규모에 해당하며, 안초공 등 궁궐 및 궁가 건축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의장 요소를 지니고 있다.

 

단청에는 여러 층위의 흔적이 남아있는데,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후반 사이에 다시 채색된 것으로 추정된다. 각 층위의 단청은 구름 모양의 운보문(雲寶紋)이나 '卍'자 형상의 만자문(卍字文) 등 다채로운 무늬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어 건물의 높은 위계를 보여준다.

 

종합적인 분석 결과, 관월당은 비교적 간단한 목가구조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내부에는 화려하고 격식 있는 의장을 추구한 18~19세기경의 왕실 관련 사당 건축물로 추정된다. 다만 2024년 해체 당시 상량문 등 건립 관련 자료가 발견되지 않아 건물의 원래 명칭, 조선에서의 정확한 위치, 배향인물 등에 관한 내용은 추가 연구가 필요한 상황이다.

 

현재 일본에서 해체되어 국내로 반입된 관월당 부재는 파주에 위치한 전통건축수리기술진흥재단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으며, 국내 전문 인력에 의한 수리 작업이 진행될 예정이다. 최응천 국가유산청장은 "광복 80주년과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은 해에 이루어진 이번 귀환이 양국 간 문화적 연대와 미래지향적 협력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